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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신형철 평론가를 만나고 / 1학년 3반 이하정
작성자장정희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8/11/13 21:00 조회수: 278

2018년 11월 9일, 우린 신형철 문학 평론가님과 만났습니다. 3시간이 조금 안되는 시간동안 들은 강연은 넘쳐 흐르는 '비명제적 지식' 들로 가득했습니다. 부디 강연이 끝난 뒤, 우리 모두가 보다 더 따뜻한 인간이 되었길 바라면서 신형철 평론가님의 강연을 이렇게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인간의 경험에 대한 비명제적 지식을 제공합니다. 명제적인 지식이란 곧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언어를 통해 명료한 표현이 가능하며, 새로 배운 명제적 지식들은 쌓이고 쌓여-잘 이해만 하였다면-누군가에게 충분히 설명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명제적 지식이란 우리가 삶속에서 느끼는 그 애매한 모든 것들. 즉, 알긴 알지만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우며 누군가에게 배우기도, 또 가르치기도 어려운 것들을 일컫습니다. 어른들께 삶 속의 은밀한 비명제적 지식을 물으면 “언젠가 알게 될 거야.”라고 답해주시곤 하시지요. 그럼 우린 도대체 언제, 어떤 방법으로 비명제적 지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요? 어른이 되어 모든 것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깨우칠 수 있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만 하는걸까요? 답은 바로 문학에 있습니다. 우린 문학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비명제적 지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합니다. 어렸을 적엔 그리도 책을 읽으라며 잔소리를 해대더니, 고등학생이 되니 이젠 쓸데없는 책들 좀 그만 읽으랍니다. 그 시간에 수학 문제를, 영어 지문을 하나 더 공부하라고 하더군요. 때론 하루 종일 안락의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책 한권 아무 걱정 없이 읽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 이건 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너무 명제적 지식만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린 조금 더 비명제적 지식의 필요성을 깨우칠 필요가 있습니다. 자아가 완성되는 고등학교 시기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해 책읽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수학문제를 풀며 논리 정연한 미적분의 세계를 맛볼 순 있어도, 책 <데미안> 으로부터 소년의 성장 이야기 속 심오한 철학적 세계를 맛볼 순 없을테니 말입니다. 

-몰락의 아름다움

‘몰락은 아름답다.’ 어째 다소 모순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형철 평론가님은 과거에 몰락하는 자들의 삶을 동경했다고 합니다. 비록 한없이 추락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을 지키는 자들의 몰락. 저의 소중한 모든 것을 세상으로부터 빼앗기는 걸 감수하는, 온 몸에 상처가득한 자들의 몰락. 어찌 이들의 몰락을 아름답지 아니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평론가님은 이런 사람들이 곧 문학을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그는 몰락의(허나 위대한)인간이 아닌, 고통받는 평범한 인간들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고통 받는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납니다. 종료된 사건이 아닌, 진행형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못한 채 그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초조해 할 뿐인 스스로에게 큰 무력감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고통 받는 인간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욥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고통 받는 인간입니다. 재산도, 가족도, 건강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그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온 그는 문득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원통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이 이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겐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신이고, 너는 인간이다. 너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라며 신은 욥을 꾸짖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잘못했다고 사죄하며 자신의 삶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신을 원망했지만 어쩌면 신을 가장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단순한 ‘불운’ 으로 자신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보다 차라리 신의 섭리라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를 ‘욥의 역설’ 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주위에도 고통스러운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만 사실 저 깊은 마음속으론 신이 나타나 그게 네 운명이니 받아들여라, 라고 말씀해 주시길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욥처럼 그들 앞에 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린 그들을 어떻게 구원해야 할까요.

불교의 5계중 ‘불살생계’ 가 있습니다. 살면서 살생을 하지 말라는, 사실 지키기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의미 없는 규칙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해 보는건 어떨까요. 우리 모두 살면서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가지만, 이를 달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건 곧 한 사람의 마음을 ‘살생’ 하는 것이라고. 이렇듯, 불교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를 위로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신을 만나지 못하면, 인간끼리라도 함께 해야지요. 위로를 말입니다. 

-위로의 방법

우린 아무리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도 결국은 타인입니다. 나의 심장은 절대로 그를 위해 뛰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극단적인 상황에 치달았을 땐 나를 지키기 위해 그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지요. 깊은 사랑과 공감에도 결국엔 몸이 달라 상대가 품은 고통을 알지 못한다는 건 매우 큰 슬픔입니다. 가족이 몹시 아파도 마음은 미어지지만 내가 그 병을 옮아 겪어보기 전엔 그 아픔의 깊이를 잘 가늠하기 어려우며, 어이없게도 때가 되면 배도 고프고 웃긴 유머 글을 읽으면 웃음도 터져나옵니다. 가족의 슬픔 조차도 나와 일체화 되긴 사실 힘든것입니다.

결국 위로와 공감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 하고 싶은겁니다. 하지만 공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하지 않겠어요? 혹여나 나의 잘못된 위로가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타인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힐까봐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래서 신형철 평론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그냥, 안아달라고. 차라리 그의 슬픔을 위해 내가 지킬 수 있는 작은 약속을 하나 건네어 보자고.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꼭 붙들고 있을 테니 슬픔이 밀려오면 언제든 전화를 하라고 약속하는 거지요.

-페미니즘, 그리고 배움이란 무엇인가

페미니즘에 대한 신형철 평론가님의 견해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남성’ 이 하는 페미니즘이라고 더 높이 평가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평론가님의 말씀들은 모두 저희에게 하나의 위로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처음 말씀하셨던 비명제적 지식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우린 무엇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습니다. 이 전에 이야기한 공감에 대해 한 번 더 살펴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엔 나와 다른 삶에 대해선 완벽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것이지요. 이제 다시 페미니즘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몇몇 남성들은 일부의 여성들의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격한 행위’를 핑계로 페미니즘을 거부하곤 합니다. 통계를 사용하여 매우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곤 하죠. 

하지만 신형철 평론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단 한 번도 여성으로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남성’ 이라는 것 자체에 당신들은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거라고. 그래도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단 한 번도 가정폭력 상담소에, 여성단체에 찾아가 그들의 아픔을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무얼 이해하겠느냐고. 과격한 시위도, 남성 혐오적 발언도 공감으로 먼저 다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라고 이해해야지, 이론과 입장은 나중에 와도 충분하다고. 

배움이라는 건 언제 하는 것일까요. 우리고 모르고 있지만, 몰라선 안 되는 것들을 발견했을 때 배우는 것입니다. 몰라도 되는 것들은 성별, 나이, 인종, 형편에 따라 모두 다르겠지요. 몰라도 되는 것들은 이 사회속에서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들어, (매우 부끄럽지만) 이제까지 저는 배고픈 삶의 고통에 대해 몰라도 삶에 큰 지장이 없었고, 성소수자로서 받는 멸시에 대해 몰라도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몰라도 되는 건 하나의 권력이라고 하셨습니다. 곧, 저는 불평등한 사회의 계급구조 속에서 가난한 자들에게-무관심이라는-폭력을 가하며 권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며, 성소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역시나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며 권력을 누린것이지요. 아까 말했던 페미니즘에 연결시켜보면,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의 삶을 몰라도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 될 수도 있겠군요. 남자든, 여자든 간에 말입니다.

하지만 신형철 평론가님은 따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몰라도 되는 시대’ 는 끝이 났다고. 그래서 우린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없는 수많은 타인들의 아픔에 대해서, 공부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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